BookReview:

니벨룽의 반지 강의 노트

by 서정원

 

 

 

 

[총평]
MUSIKBAUM이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을 맞이하여 준비한 특강의 공식자료입니다.
4명의 발표자가 각자 자기 맡은 악극에 대해 쓸 것이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서정원 선생님 한분의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공연을 가시려는 분들에게는 필수입니다.

[저자]
서정원
클래식 공연 기획자, 오페라 칼럼니스트, 한국바그너협회 회원
라고 속표지에 쓰여 있습니다.

 

[주요 내용]

1. 이 강의노트는 옛날(?) PC통신 천리안 시절, 로게라는 필명을 가지고 글을 쓰셨던 서정원 선생님의 "니벨룽의 반지 무협지 버젼"의 완결판입니다. 그 당시 그 글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국내에 니벨룽의 반지에 대한 아무런 자료가 없던 시절, 반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만 했던 필수 참고 글이었습니다.


2. 문제는 서정원 선생님께서 아주 멋있게 운을 띠우며 시작을 하셨으나 끝을 내지 않으셨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온갖 PC통신들과 인터넷 탐색을 통해 구해서 본 것이 발퀴레 1막 정도까지였고, 아마도 그 다음은 쓰지 않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A4 용지 100 여 페이지를 마스터 인쇄한 이 노트는 기본적으로 반지 4작품의 대본을 시간 순서대로 쫒아 가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번역(?)과 적절한 해설을 붙이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4. 내용은 놀랄 만큼 좋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보면,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아 다니는 반지 줄거리 축약본의 다른 한 형태처럼 보입니다. 그저 좀더 길고 자세하게 써놓은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노트 안의 내용을 꼼꼼이 읽어보면 글쓴이의 가공할만한 공력이 보이는 곳이 한 둘이 아닙니다. 길고 지루한 반지의 대사들중에서 꼭 필요한 부분들만을 짜집기(!)해가며  번역과 해설, 그리고 가끔씩 유도동기들에 대한 설명을 붙이는데, 긴 대사속에서 반지 감상자가 반드시 알고 지나가야할 - 여러 반지 해설서에서 문제시되고 토론/언급거리가 되었던 - 부분들만을 골라내는 실력이 이 책의 핵심 경쟁력입니다.

단순히 중요 부분을 찝어낼 뿐 아니라, 그것이 왜 중요하고 문제시되는 지에 대한 설명을 붙임으로서,  초보 반지 감상자가 15시간동안 맨땅에 헤딩하는 것을 방지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부작용으로 이 노트를 서너번 읽고 나면, 마치 링을 모두 보았고 전부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솔직히 어림 반푼어치도 없습니다.)

 또 이 노트는 골수 바그네리안들에게도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반지 대본과 관련된 주요 이야기꺼리들을 한곳에 집대성해 놓은, 참고서 같은 역할을 해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부가적으로 일반 줄거리 축약본에서는 볼수없는 각 악극의 (시간대별) 배경 설명이나, 각 캐릭터에 대한 해석등 좋은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노트를 읽은 다음에야, "극 내용이 이래서 이렇게 진행되었던 거구나"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5. 제본등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나쁩니다.
과연 이것이 5,000원 짜리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나쁩니다. 일단 A4용지 크기이기 때문에 참 간수하기가 나쁩니다. 게다가 문단의 포맷이 지크프리트 정도 까지는 착하게 좌우 정렬 형태로 가다가, 신들의 황혼에서는 좌측 정렬로 바뀝니다. 글쓴이가 마지막에는 시간에 쫓겼다는 간접 증거입니다. 다행스럽게 눈에 거슬릴 정도의 오자/탈자는 없지만, 그래도 한글로 써놓은 독일어 발음등, 더 다듬고 내보냈으면 좋았을 부분들이 눈에 띄입니다. 빈 줄(blank space)가 많은 것도 의도적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실제로 책을 보시면 뭐가 문제인지 그 자리에서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6. 개인적으로 볼때, 옛날에 쓰셨던 <무협지 버젼> 보다 매우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글쓴이가 더이상 20대의 날렵한 청년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글이 점잖아지고 또 무게가 생기면서 "치고 나가는 맛" 혹은 "발랑 까진 맛"이 싹 사라졌습니다. 이전 글이 19금에 해당했다면, 지금은 중고등학생 관람가 정도라고 할까?

 또, 해설서가 가지는 한계일지 모르나 지나치게 단순하고 직선적인 텍스트 해석만을 기초로 깔고  이야기를 진행해갑니다. 예를 들어, 링 싸이클의 진짜 주인공이 지크프리트인가 보탄인가에 대한  답에 따라, 동일한 텍스트도 전혀 다르게 읽어 나갈 수 있을터인데, 가장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을  차용하여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갑니다. 틀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기에 뭐라 할 수 없지만, 빠진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7. 일본 바그너 협회 회장 미야케 유키오 교수의 축사가 앞에 붙어 있습니다.
속으로 "재주도 좋다"라고 생각했습니다.

 

8. 원래 링 공연장에는 대본 들고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 공연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현재 가장 권위있는 반지 텍스트는  엄선애 교수님의 <니벨룽의 반지>이지만, 이것은 두껍고, 읽는데 정성이 필요한, 제대로 된 책(!)입니다. 또 음악과 전혀 상관없이 텍스트만 번역한 경우라서 글과 음악이 같이 가는 악극의 경우에는 권해드리기가 참 애매했습니다. 그렇다고 인터넷의 1장 짜리 요약을 들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노트는 정확하게 이 둘 사이를 파고 든 경우입니다. 아마도 공연장에 들고 가야할 단 하나의 종이 뭉치가 있다면 이 노트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원철의 판단]

권유대상:
  - 반지의 대략적인 내용과 등장인물 이름은 파악했으나, 그래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 집에서 DVD를 보다가 쉽게 뒤적일수 있는 해답집이 필요한 사람.  

소장가치: B
  내용상으로 보면 A급이 분명하나, 도저히 제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B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C를 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 공연을 보실 분들이나 마음이 조급하신 분들은 구해보셔야 하지만, 언젠가 제대로 된 제본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지기에 일단은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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