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출연진들에게 듣는다. 

- 그 첫번째 시간: 2005년 게르기에프의 서울 반지 공연 -

 

 
 


사회: 안녕하십니까? 오늘 사회를 맡게 된 박원철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2005년 9월 서울에서 열렸던 게르기에프 지휘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서울 공연과 관련하여 출연자 몇 분을 모시고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귀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이번 공연의 의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누가 먼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보탄 선생님 ?

보탄: 아마도 가장 큰 의의는 "한국 최초의 반지 전곡 공연"이라는 점이겠지요. 왔다갔다 하느라 피곤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관객들의 높은 반응에 몹시 놀랐습니다. 또 구미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것이지만, 한국에서도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오페라 강좌등을 통해서 미리 예습하고,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모습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는 무척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의 공연음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사회: 한국 관객의 어떤 반응들이 인상적이셨나요?

보탄: 일단 표가 팔렸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에 서는 저희도 그렇고 옆에서도 그렇고, 이번 공연 끝나고 나면 기획사는 확실히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습니다. 저는 내심으로 개런티도 걱정했고요. 그런데 일단 별 탈 없이 다 넘어갔으니 그게 어딥니까?
게다가 많은 분들이 소위 말하는 "충실한 예습"을 하고 오신 듯이 보였습니다. 또 이것이 좋은 점인지 아닌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부 관객분들은 무대는 쳐다 보지도 않고 앞에 있는 대본 스크린만을 쳐다 보고 계시더군요. 아마도 대본 번역이 좋았나 봅니다. 저야 한국말을 못하니 그 번역의 질에 대해 할 말이 없지만.....

사회: 예, 공연장 바깥에서 줏어 들은 이야기 중에는 "이번 공연의 진정한 승자는 대본 번역이었다"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로, 실은 대본이 좋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한국 관객의 관람 태도에 대해서도 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탄: 한국 사람들 다혈질이라고 들었지만, 그렇게 다혈질인줄 몰랐습니다. 일단 박수부터 치고들 보는데, 실은 모두 놀랐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안 끝나고 노래만 끝나도 박수부터 치는데, 다른 나라 무대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봐야 신들의 황혼 3막에서 끝나고도 막이 내려오지 않는 상황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것도 앞서 말씀드린 한국인들의 특징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공연을 보러 가시거든 한국분들은 절대로 먼저 박수 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객석에서 혼자 박수치고 계시는, 다른 모든 관객이 무대가 아닌 한국분만 쳐다보는, 그런 상황에 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이제 구체적인 공연 이야기로 옮겨 볼까요?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어느 분이 대답해 주시겠어요? 브륀힐데 님?

브륀힐데: 호이토호 ~ 호이토호 ~

지크프리트: 제발 그 소리 좀 집어 치워. 시끄럽잖아. 무대위에서나 하라고.

브륀힐데: 나는 호이토호~ 부터 해야 목소리가 좀 나와. 어쩔 수 없어. 이 땅딸보야!

지크프리트: 이번에 땅딸보로 나온 것은 내 잘못이 아냐. 그 가수가 어쩔 수가 없었어. 스펙이 안 받혀주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지크프리트때는 그나마 조금 나았는데, 신들의 황혼에서는 정말 나도 답답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어. 실은 그래서 쿨럭 쿨럭 몇번 기침도 하고 그랬어.

브륀힐데: 하기사 스펙 안 받혀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지.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들 하던데. 아마도 유럽쪽 다른 무대에서 어떻게 나왔었는지 한국 사람들은 보지 않았었나 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쪽 팔렸는데.

지크프리트: DVD 시대야. 아마도 다른 반지 DVD본 사람들 많았을 거야. 그나마 너는 좀 낫지, 나는 뭐냐?

사회: 자.. 자.. 잡담은 그만 하시고, 원 질문으로 돌아와서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보탄/ 브륀힐데/ 지크프리트 (한 목소리로) : "러시아 링"이요.

사회: "러시아 링"이요? 그게 무슨 뜻이지요?

보탄: "독일 링"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브륀힐데: 뭘 모른다는 의미도 있어요.

지크프리트: Tod zu Gergiev!

브륀힐데: 지크프리트, 그것은 내 대사야. 함부로 빼앗지마.

지크프리트: 피싯! 어차피 할 것이면서 .....

사회: 여러분들께서 너무 오랫동안 독일쪽 무대에 계셔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잘 모르는 한국 관객들을 위해서 조금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러시아식 반지라고 하셨는데, 이 러시아식 반지의 좋은 점이 무엇이었나요?

보탄: 제게 인상이 깊었던 것은 러시아의 오랜 발레 전통과 접합을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라인 황금의 첫 막은 다른 극장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올라갔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라인강의 물결을 형광색 머리장식을 한 발레리나들의 조용한 머리짓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그런 시각화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리 쿠퍼 바이로이트 연출에서의 레이저 라인강 이후, 가장 괜찮은 시도였다고 보여집니다.

지크프리트: 나도 동감! 지크프리트 1막에 보면 맨 마지막에 내가 미메의 쇠모루를 노퉁으로 짜~악~ 가르는 장면이 있는데, 무대에 올라가 보니까, 이런 젠장, 쇠모루가 없는 것 있지? 속으로 "X 됐다" 하면서 계속 노래하면서 가는데, 머리에 빨간 형광 막대기 꽂은 애들이 불꽃이랍시고 하나씩 나타나는 것 있지? 개네들 데리고 풀무질 모양하는 것 봤어? 내가 손을 쭉 뻗으면 장풍 맞은 듯이 뒤로 넘어갔다가, 다시 손을 거두면 내 쪽으로 몸을 비틀고 하는 것 말이야. 그거 되게 재미있었어. 나도 처음 해 보는 것이었거든. 게다가 압권은 그 모루 쪼개는 것이었는데, 맨 마지막에 노퉁으로 위에서 아래를 탁 치니까, 얘네들이 그 자리에서 동그란 모양을 그리면서 뒤로 발라당 넘어지더라. 그거 정말 참신하더라. 무대 별로 지저분하게 되지도 않고.

보탄: 그외에도 생각해보면, 다른 무대의 연출과 비교해서 사람들이 무대에 참 많이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니벨하임 씬도 그렇고, 라인강의 기행 씬에서도 굳이 기비히 사람들 모두 무대에 올리고 말입니다.

브륀힐데: 그래서 우리끼리는 "러시아식 인해전술"이라고 불렀잖아. 여기 저기에 사람들을 잔뜩 깔아 놓고 진행해 간다고 말이야. 아마도 인건비가 유럽쪽보다 싸서 이렇게 할 수 있었나봐. 나도 발퀴레 3막에 내가 불에 쌓이는 장면을 조명이나 특수 효과없이 사람들이 나와서 불꽃 역활을 대신하기는 했는데, 나는 불만이야.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아.

지크프리트: 뭐가 불만이야?

브륀힐데: 그런 식으로 잔챙이 불꽃들을 보여줄 것이면, 차라리 "로게, 로게"라고 보탄이 부를때 로게도 나타났어야 돼. 그러면서 로게가 잔챙이들을 하나 하나 불러 들이는 그런 식으로 무대를 꾸며야 했어.

지크프리트: 차라리 니가 연출을 해라.

보탄: 내가 로게 불렀지만, 그 자식 싫어.

브륀힐데: 게다가 말이야, 막판에 발할라 무너질때 그 잔챙이 불꽃 애들 다시 나왔었나? 안 나왔던 것 같은데? 진짜 불꽃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불꽃이 없었고, 시뻘건 싸구려 조명으로 처리해 내려고 했어. 내 생각에는 연출 실패야. 머리 나쁜 사람들이 연출을 하면 이렇게 되고 말지.

보탄: 그때는 발레리나들이 다시 라인강 만들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었지. 하지만 연출 실패라는 말에는 나도 동감!

지크프리트: 어 ... 어.... 우리 마누라가 실패라면, 나도 실패라고 할래.

사회: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는 쪽으로 흐르는 군요. 무슨 근거로 연출 실패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하시는 지요?

지크프리트: 이거 얘기해도 되는 거야?

브륀힐데: 못 할 것도 없지 뭐.

보탄: 음.....

브륀힐데 (보탄을 그윽히 쳐다보며): 이제 당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세요.

보탄: 음.....

사회(브륀힐데를 흉내내며):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보탄: 실은 등장인물들끼리 무대 뒤에서 이번 연출에 대해 말이 많았어요. 그러나 게르기에프와의 관계때문에 함구들 하고 있었지요. 게르기에프 선생께서는 앞으로 이것을 몇번 더 우려 먹어야 돼고, 나중에는 DVD도 내고 하셔야 하는데, 우리가 앞장 서서 험담을 하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요?

사회(당황해서 말을 끊으며): 여기서 잠시 전하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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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시간 내내,
사회자는 출연자들에게 마음을 진정시키라며 물을 권했으나
출연자들은 그들이 가져온 맥주를 마시면서 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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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부에 이어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1부에서 보탄 선생님께서는 연출의 문제로 말이 많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 드려보겠습니다.

보탄: 등장인물 개개인의 불만들은 소품 준비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는 무지개 다리를 만들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만, 돈이 없는 관계로 뒷머리를 무지개 색깔을 쫓아 염색하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프로도 좋아했지만, 처음에는 굉장히 실망한 눈치였지요.
도너는 극중 내내 망치가 없었습니다. 망치 없는 도너를 상상해 보셨습니까? 이것은 맥도날드에서 콜라 팔면서 빨대 안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냥 마실 수도 있고 꼭 빨대 껴주어야 한다는 법도 없지만, 가수 자신도 편하고 보는 관객도 편안하려면 꼭 필요한 그 무엇인가를 빼놓은 것 말입니다. 물론 저희도 건의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거부 당했습니다.

사회: 알수 없는 이유요 ?

보탄: 예. 알 수 없는 이유요. 즉, 답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좀더 정확히는 망치를 들지 말라고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거나 수긍할 만한 의견이 주어지지 않은 채, 막연히 "안 들고 나타났으면 좋겠다"라는 뜻만 전달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별 수 있나요?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이 옷 입으라면 입고, 이쪽으로 뛰라면 뛰고.....
제가 들고 다니던 창만해도 그렇습니다. 바그너 원본대로 라면, 그 창에는 계약이라고 불리는 것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공연할 때는 창에 무늬들을 그려 넣거나 해서 적어도 그 시늉은 합니다. 이번에는 어디서 쓰다남은 대걸레 자루 같은 것을 갖다 놓고 저보고 연기하라고 합디다. 실은 상당히 속 상했습니다. 보탄의 권위/ 의지 = 창 으로 음악에서 분명히 규정되어 있는데, 이런 중요한 것을 대충 대충 해서 넘겨 주다니.... 게다가 이번 공연에서의 동작 지시에서는 창이 수 차례 보탄의 손을 떠나서 바닥에 팽겨쳐 놓여 있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해 본적이 없고, 또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정말 정말 이상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경우에서 왜 그렇게 되어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사회: 이번 공연에 별도의 연출가는 없지 않았나요? 티시핀이 무대 장치를 디자인하고, 게르기에프가 전체적인 예술감독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크프리트: Toten Sie Gergiev. Er ist ein Russe. Er versteht Wagner nicht.

브륀힐데: 그런 이야기 하지마. 잘못 하면 너 짤려.

지크프리트: 나를 짤라? 그러면 라인황금이랑 발퀴레만 하고 끝내게? 흥, 웃기지도 않아.

사회: 어차피 이번 연출에 대해서 게르기에프가 여러 신화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겠다는 취지를 밝히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꼭 도너의 망치나 보탄의 창 같은 특정 소품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될까요?

보탄: 저희는 지극히 현대적인 연출부터 지극히 고전적인 연출에까지 다 출연해 보았습니다. 어차피 저희들이 주인공들이니까요. 그리고 각 연출가마다 자기의 스타일이 있고 또 강조점이 다른 것도 충분히 이해하며, 실은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희들이 싫어하고 당황하는 것은, 주어진 연출 지시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흩어져서 결국은 출연자 자신들과 관객들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입니다. 이번 게르기에프는 정확히 그런 상황입니다.

지크프리트: 예를 들어, 라인황금 4막에 보탄의 머리에 씌웠던 이집트(?)식 머리 장식같은 것을 들 수 있겠지. 나는 그것을 보고 웃겨서 한참을 웃었어요. 물론 나중에는 한심해서 한숨으로 바뀌었지만 말이야.

보탄: 오, 그 끔찍한 것은 언급도 하지 마. 그 머리 장식의 예처럼 중동 어느 나라의 기발한 장식을 따와서 관객들의 시선을 한번 끄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했나요? 정말 게르기에프가 선전하듯이 "여러 신화속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나요? 제 머리에 쓰고는 있었지만,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이야기의 촛점을 잃어 버리게 하는 아주 나쁜 소품에 불과합니다.

사회: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고요?

보탄: 예. 반지의 대본이 이야기해주는 주제는 수십 가지 이겠지만, 그것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은 "자기가 읽은 반지"를 무대라는 공간에서 시각화 해주고 표현해 내 주어야 합니다. 일종에 "대본을 읽어 가면서 설명해주는" 역할이라고나 할까? 만약 이 "대본 읽어 주는 사람"이 머리가 좋고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면, 그러면 그때는 굉장히 재미난 무대가 되는 것이지요. 역사상 유명한 반지 공연이었던 1976년의 패트리스 쉐로의 연출이나, 88년 하리 쿠퍼의 연출 DVD를 보시면 제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16시간 동안의 꼬여 있는 이야기를 각자가 뽑은 하나의 주제 아래 통일되게 사람들에게 제시했습니다. 정말 볼 만 했지요.
이번에 서울에 있었던 게르기에프는 어땠습니까? 그가 진정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무대를 통해서, 연기를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감을 잡을 수 있으셨습니까? 오히려 그가 꾸민 무대나 연기자들의 동선, 그리고 소품이나 의상이 사람들을 더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혼돈에 빠뜨렸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저는 게르기에프 자신도 자기가 하고 픈 말이 무엇이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알았다면 적어도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사회(꿀꺽): .....

브륀힐데: 그러니까 이상한 것이, 한편으로 게르기에프는 훈딩의 모자위에 개머리 마크를 가져다 붙이거나, 프리카가 등장할때 양머리 장식을 한 시녀 두명이 앞장설 만큼 전통적인 해석을 쫓아 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발퀴레들에게 창을 몽땅 빼앗고 그냥 방패만 달랑 - 그것도 깃털달린 작은 방패 -만 주는 등, 도대체 무엇을 진정으로 원했는지 아직까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니까.

사회: 일단 게르기에프가 그다지 혁신적이거나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작곡자의 원 취지에 충실하려고 했던 듯 한데 .....

브륀힐데: 그게 문제에요.그리고 우리가 러시아 링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것이고요. 원래 텍스트가 가진 의도가  뭔지 잘 모르면서  "못 먹어도 고"하는 심정으로 일단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고, 욕 먹으면 고치고 남들이 뭐라고 지랄 안하면 그냥 넘어가는 시스템이요. 독일 링에서는 연출가들이 자기 이름 걸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적당히 적당히는 못 해요.

사회: 말씀이 조금 심하신 듯 하네요.

브륀힐데: 그 타른헬름 보셨어요? 라인황금에서는 커다란 투명 밀집모자였다가, 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에서는 빨간색 나무젓가락 두개 붙인 것 처럼 변한 것 보셨어요? 그나마 서울 공연에서는 그 빨간 타른헬름에 붙어있던 술 마져 다 떨어져서 지크프리트 맨 얼굴이 그냥 보였어요. 그래도 전혀 문제 없는 듯이, 실은 뻔뻔하게 공연한 게 게르기에프에요. 뻔뻔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것을 미리 체크할 머리가 없든지.

지크프리트: 나는 파프너가 깔고 앉아서 밀집모자가 납작해진 줄 알았지. 게다가 빨간 색인 것은 파프너가 앉다가 x구멍을 찔려서 빨갛게  물이 들은 줄 알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신들의 황혼 1막 마지막에서 그 타른헬름/ 군터 변신 장면은 정말 한심하기는 했어.

사회: 뭐가 또 문제가 있었나요?

지크프리트: 아, 아저씨는 못 보셨구나. 그 장면에서의 백미는 내가 브륀힐데를 쓰러 뜨리고 반지를 뺏은 직후, 저주의 동기가 흘러 나오고, 지크프리트 3막에서 둘이 처음 만나서 서로 그윽하게 눈을 맞출 때 나오던 사랑의 동기가 다시 나올 때, 나는 눈은 맞추되 브륀힐데를 못 알아보고 브륀힐데는 그런 나를 쳐다보고 나서 좌절하는 장면인데, 우리는 통째로 연기를 생략했어요. 그래도 연출하는 아저씨가 뭐라고 안 하시던데?  독일 같았으면, 그 다음 장면 - 타른헬름 벗고 노퉁 빼서 약조하는 장면 - 나가기 전에 무대위로 구두가 날라왔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람들은 참 마음씨도 좋아요. 아참, 구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날 내가 남자 양복 구두 그냥 신고 무대에 올라 갔던 것 본 사람 있나? 소품 챙기는 애가 그런 것은 챙겨줘야 했던 것 아닌가?

사회: 저는 그 검정 구두 보았어요. 싸구려같아 보이던데.

지크프리트: 그거 싸구려 맞아요. 러시아제 거든요.

브륀힐데: 실은 사람들이 별로 못 보아서 그렇지, 계속 이런 식이었어요. 발퀴레 3막에 보면 제가 누워 있던 앞쪽 거상 뒤에 양 옆으로 붉은 뿔이 달린 거상이 3개 서 있었어요. 그중 가운데 것에는 위 아래로 움직이는 빗살무늬의 살이 꽂혀 있었는데, 꼭 같은 장면이 지크프리트 3막에 또 나오거든요, 근데 지크프리트에서는 그 우산살같이 꽂혀 있는 것이 몇개 빠져 있었어요. 그리고 돌아가던 빨간 뿔도 안 도는 것도 있었고..... 그래도 상관없이 저는 그냥 노래 부르고 있었어요. 실은 창피해서 혼 났어요.

사회: 아, 말씀하신 그것은 저도 보았습니다. 저는 "붉은 뿔 돌고 안돌고"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 몹시 고민하면서 보았는데요.

브륀힐데/ 지크프리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

사회(뻘줌해서): 아마도 고장난 무대 장치를 고치지 않고 계속 썼나 보내요. 그 거상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탄: 솔직히 이야기해서 사기지요. 나흘 밤 동안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 줄 듯 보여 줄 듯 하다가 하나도 안 보여 주었으니 사기라는 소리가 나올만 하지요. 거상과 관련하여 그 위치와 자세, 부착된 장식품의 차이, 그리고 머리 모양의 변화와 심장 박동시 불이 들어 오는 등, 여러 볼만 한 요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각각이 어떤 뜻을 가지는지에 대한 통일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 단계입니다. 무대 장치로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반지라는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가장 좋은 예일수도 있고요.

지크프리트: 그런데 왜 맨 마지막에 석상 4개중에 3개만 넘어가고 1개는 안 넘어갔어?

브륀힐데: 몰라. 줄이 고장났나 보지.

지크프리트: 그리고 너는 왜 안 죽었어? 실눈 뜨고 보니까, 너도 그냥 라인처녀들하고 뒤로 걸어 내려가던데. 네가 죽어야 진짜 끝나는 것 아니었어?

브륀힐데: 이번 연출은 내게 묻지 말라고 했지? 내가 불속에 뛰어 들고, 하겐 나오고, 라인처녀들이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게 원래 설정인데, 여기서는 하겐 나오고, 내가 째려 보고 그 광선을 맞은 하겐이 쓰러져 죽고, 나랑 라인처녀들이랑 같이 걸어 나가면서 끝났어. 이런 황당한 엔딩은 나도 보다 보다 처음이야. 천하의 브륀힐데가 죽지 않고 끝나다니. 차라리 죽느니만 못해.

보탄: 혹시 그 넘어가지 않은 거상이 실은, 너 브륀힐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머지 3 거상은 그 시점에 무대 위에 남겨진 3 시체 - 지크프리트, 군터, 하겐 -을 표시하고 .....

지크프리트: 그렇게 본다면, 3막 시작할때 부터 모가지 없던 거상은 누구를 상징하는 거야? 그게 나야? 군터야? 아니면 하겐이야? 우리는 모두 목이 붙어 있었거든. 이런 식의 황당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 반지 연출이지만, 적어도 이번 경우에는 아니야. 너무 자의적이고, 일관성이 결여돼 있었어. 심지어는 우리 세 명끼리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의 연출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서 이렇게 헤매고 있잖아. 그게 말이 돼?

브륀힐데: Tod zu Gergiev!

지크프리트: 이제야 자기 대사를 제대로 하시는군.

사회: 자... 자... 격앙된 분위기를 좀 진정하시고요.... 좀 밝고 좋은 이야기를 해 보시지요. 뭐가 새롭고 좋으셨습니까?

브륀힐데: 라인황금 1장과 2장 사이의 간주곡 동안 로게가 나와서 라인처녀들과 만나는 장면이 잠깐 무대에 등장해요.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장면인데 다른 극장에서는 그렇게들 안 했거든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그리고 이제까지 보았던 그 어느 공연보다도 발퀴레 1막이 밝았어요. 대개 그 막은 아주 깜깜하고 음침하게 무대를 꾸며 놓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밝고 산뜻한 조명으로 1막을 처리했어요.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으니까요. 또 이번 공연에서 지그린데는 정말 노래와 연기 양쪽을 모두 잘 했지요.

지크프리트: 오 어머니, 나의 어머니.

브륀힐데(한심하다는 표정으로) : 오 나의 마마보이.

지크프리트: 내 차례야? 파프너랑 파졸트 분장은 어땠어? 원래 거인 = 돌 이었잖아.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이상하게들 만들었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돌 모양을 다시 찾은 것 같아. 다만 지나치게 싸구려 자재를 써서 거인보다는 로보트처럼 보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걔네들 빼고 나는 내가 좋았어. 특히 지크프리트 할때는 연기가 거의 자동적으로 따라왔었어. 아마 내가 다시 태어났으면 100% 록 가수가 될거야. 나는 조명 받는 것을 좋아하거든.

보탄: 조명도 전체적으로 나쁜 편이 아니었지. 그렇지만 색깔 코드를 관객들하고 맞추었는지는 모르겠어. 게다가 연기하려고 다녀야 되는 동선이 좌우로만 되어 있는 등, 너무나 단순했어. 그 높은 천장을 전혀 사용 못 했다고나 할까? 메뚜기처럼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니 편하기는 했지만, 뭔가 개운치 않아. 어쨌던 내게 이번 공연은 너무나 혼란스러워. 이것이 게르기에프 탓인지, 에르다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회(시계를 쳐다 보고 놀라서): 의상 이야기와 음악 관련 이야기들을 하지도 못했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는 줄 몰랐습니다. 아쉽지만 끝 맺어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한 마디씩 해 주시지요.

지크프리트: "짧게 한 마디" (멀뚱멀뚱)

브륀힐데: 앞으로도 반지 보러 오세요.

보탄: 예, 서울에서 재미있게 보셨다면, 세계 어디를 가셔도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앞으로도 반지와 저희 모든 출연진들을 계속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탄/ 브륀힐데/ 지크프리트: 안녕히 계세요.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Transcription by 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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