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vs.  톨킨의 <반지의 제왕>

- 그 신화 사용을 중심으로 -

 

 
 


바그너가 그의 역작 <니벨룽의 반지>를 처음 초연한 것은 1876년이다. 또 영화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 초판은 1955년에 출판되었다. 양쪽 모두 제목에 반지가 들어가고, 또한 판타지 장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로 인해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두 작품간의 관계를 조명해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톨킨 팬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이 모든 시도에서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의 반지에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논의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만약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의 반지와 아무 상관없다”라고 주장한다면, 바그너 팬들이 몹시 섭섭해 할 것이고, 반대로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 반지의 (영국식) 아류이다”라고 말한다면, 격분한 톨킨 팬들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먼저 제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자: 바그너의 반지와 톨킨의 반지는 같은 샘물에서 흘러나온 서로 다른 물줄기와 같다. 즉, 각각 이야기의 시작점은 동일하지만 그 변화 과정과 최종 지향점이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질문 – 영향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안 받았다”에 가깝다고 본다. 좀 더 정확히는 “톨킨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가능한 한 상이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또 성공했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하겠다.


바그너의 경우

바그너의 반지와 톨킨의 반지가 비교 대상이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양쪽 모두 북구 신화 –특히 운문 엣다와 볼숭가 사가-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반지”도 바로 이 북구 신화의 유명한 “안드바리의 반지”에서 차용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난장이 안드바리의 반지와 그 저주 이야기를 보기로 하자. 북구 신화의 주신인 오딘과 말썽꾸러기 신 로키, 그리고 회니르가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다가 어느 강가에서 장난삼아 수달을 한 마리 잡아 죽인다. 그리고 죽은 수달을 들고 근처 어부의 집에서 하룻밤 잠을 청한다. 그러나 집주인은 신들의 손에 들린 수달을 보자마자, 집에 있던 2명의 아들들과 함께 신들을 결박해 버린다. 포박당한 신들에게 집주인은 그들이 잡아 죽인 수달이 자기의 둘째 아들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수달의 시체를 가릴 만큼의 황금을  배상금으로 요구한다. 이에 로키만 혼자 풀려 나와, 깊은 폭포 속에 물고기로 변신해 살고 있는 난장이 안드바리에게 가서 그를 그물로 잡아 올리고 안드바리가 소유했던 모든 금을 빼앗는다. 로키가 안드바리의 모든 금을 빼앗고, 마지막으로 안드바리의 손에 끼여 있던 반지까지 요구하자, 그때 안드바리는 이후로 자기의 금을 가지는 모든 사람들이 파멸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로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돌아와 안드바리의 황금으로 수달의 시체를 덮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집주인 흐레이드마르는 죽은 수달의 수염이 보인다며 오딘이 가지고 있던 안드바리의 반지로 수염을 가려줄 것을 요구한다. 신들이 그 말을 따르고 풀려 나자, 그 후 흐레이드마르의 맏아들 파프니르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혼자 보물을 독차지한 후 용으로 변해 버린다.


<니벨룽의 반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반지 4부작 중 첫번째 라인황금의 이야기와 꼭같지는 않지만 놀랄만큼 유사함을 알아 차렸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달라지지만, 줄거리의 기본 얼개는 안드바리의 반지 그대로이고, 대신 <니벨룽의 반지>의 경우, 바그너는 반지 자체에 몇가지 새롭고 중요한 속성들 – 사랑을 부인한 자만이 만들 수 있다는 점과 세상을 지배할 힘을 얻는다는 점 – 을 부여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안드바리의 반지가 단순히 저주를 지닌 물건에 불과하다면, 바그너의 반지에서는 처음으로 마법적 속성을 가진 (마법) 반지로 만들었다고나 할까?


이처럼 바그너가 북구 신화를 차용한 것은 <니벨룽의 반지 4부작>에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위에 언급한 안드바리의 반지 이외에도 오누이 시그문트와 시그니의 사랑, 오딘의 명을 거역한 죄로 발키리 신분을 빼앗긴 시그르드리파, 부러진 아버지의 칼을 다시 붙이는 시구르드, 용을 죽이는 이야기, 양 아버지와 싸우고 그를 죽여 버리는 시구르드, 브륀힐드 때문에 영웅 시구르드가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 등, <니벨룽의 반지> 줄거리 거의 대부분을 북구 신화와 그 전설에 기대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많은 북구 신화 속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니벨룽의 반지>가 북구 신화의 오페라 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바그너가 북구 신화 속의 여러 에피소드들은 따왔으되 그것을 자기의 필요에 맞게 완전히 각색/ 가공했기 때문이다. 또 그 가공의 정도가 원래 신화의 모습과 전혀 달라지는 것에 개의치 않는 정도로 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 운문 엣다에서 오딘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 왕을 도와준 벌로 잠이 든 발퀴레의 이름은 시그르드리파이다. 여기에 반지의 지크프리트에 해당하는 시구르드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발키리는 브륀힐드이다. 서로 다른 발키리이다. 하지만 바그너에게는 발키리가 둘 씩이나 필요 없었다. 따라서 바그너는 이 둘을 하나로 간단하게 합쳐 버리고(!) 자기의 악극을 만들어 나갔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브륀힐데 하나로 통일시켜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도록 하자. 안드바리의 반지를 가지고 용으로 변한 파프니르는 맏아들이었다고 위에서 언급했다. 이 용을 죽이게 되는 시구르드에게 반지 이야기를 해주는 자는 바로 파프니르의 살아남은 셋째 동생 레긴이다. 문제는 볼숭가 사가에서의 레긴은 주인공 시구르드의 양아버지라는 점이다.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미메에 해당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니벨룽의 반지>에서 미메는 황금을 훔쳐서 반지를 만든 알베리히의 동생이지, 용으로 변한 파프너의 동생이 아니다. 반지에서 파프너에게는 엄연히 다른 형제 – 파졸트 –가 있기 때문이다. 가사를 직접 썼던 바그너가 이런 상충되는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자기에게 필요한 내용만 추려서 자기가 원하는 용도로 새로 재단했다고 보아야 한다.

옛부터 그리스 비극을 오페라로 옮길 때 그 가사를 손보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기본 줄거리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바그너의 경우, 북구 신화의 많은 에피소드들을 차용하면서 과감하게도 그 내용을 변경시켜 자기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니벨룽의 반지>를 보면서 느껴지는 과도한 폭력성과 염세성은 분명히 이런 북구 신화의 에피소드들을 사용하면서 생겨난 부수적인 현상이고, 여기에 바그너 자신이 꿈꿔 왔던 사회주의적이고 영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인간형의 제시가 더해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니벨룽의 반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톨킨의 경우

<반지의 제왕>이 북구 신화의 영향을 받았고 환타지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다만, <반지의 제왕>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가 북구 신화의 영향을 받았는지 찾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만 본 사람은 이 논의에서 끼워주지도 않는다. 원본을 읽어라. 아니면 입을 다물라.) 흔히 <반지의 제왕>과 북구신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제시되는 두 가지의 예는, 위에 언급한 저주 받은 안드바리의 반지 이야기와 시구르드의 칼 그람 이야기이다.


반지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이번에는 칼 이야기를 보자. 볼숭가 사가의 주인공 시구르드는 양아버지이자 대장장이인 레긴이 만들어 주는 칼을 번번이 부러 뜨려 버린다. 대신 그는 자기의 생모에게 가서 영웅이었던 아버지 시그문트가 남긴, 부러진 칼 그람을 받아 온다. 그리고 그 칼을 새로 붙여서 자기의 칼로 만들고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용을 무찌르러 나간다. 여기서의 칼은 분명히 그의 출생 신분과 권위,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 낼 영웅적 업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라곤의 나르실이 그것이고, 지크프리트의 노퉁이 그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지의 제왕>에서 북구 신화 속의 에피소드에 대한 직접적인 관련은 여기서 끝난다. 반지와 칼, 단 두 가지 외에 없다. 북구 신화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범벅 해 놓은 바그너의 반지와 달리, 톨킨의 반지에서는 북구 신화와 대응되는 뚜렷한 에피소드들을 찾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앞서 언급한 반지 이야기나 칼 이야기도 <반지의 제왕> 중심 줄거리 속에서 1:1로 대비되지는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모든 것을 감시하는 사우론의 눈이 외눈박이 신 오딘과 닮았다거나, 간달프의 백마 섀도우팍스가 발 8개 달린 오딘의 말 슬레이니프를 연상시킨다고 주장하지만, 그 정도의 엷은 연관성이라면, 우리나라의 외눈박이 도깨비들은 사우론의 손자들이어야 하고, 적토마에 올라 탄 관우는 중국판 간달프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되는 진짜 질문은 “이렇듯 유사한 내용도 많지 않다면, <반지의 제왕>은 어떤 의미에서 북구 신화의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답은 훨씬 교묘한데 숨어져 있다. <반지의 제왕>이 북구 신화에서 보고 배운 것은 각각의 개별 에피소드가 아니라, 북구 신화의 이야기 구조이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길고 긴 족보에 대한 관심이다. 톨킨은 거의 대부분의 주인공을 소개할 때 그의 가족사에 대한 긴 언급을 한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가에서 나온 역사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를 톨킨이 자신의 소설에서도 사용한 것이다. 부록A으로 붙어있는 누메리안 왕가의 아라곤 족보나 부록 C에 붙어 있는 호빗들의 족보 표는 그 좋은 예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마치 (사가에서처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를 배우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보여지는 사가의 두 번째 특징으로 정형화된 인물 묘사를 들 수 있다. 여기서의 정형화란 재미없고 생동감 없는 등장인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물의 첫 묘사부터 앞으로 그가 대강 어떤 행동을 보일지 미리 짐작케 할 만한 힌트를 미리 뿌려 놓음을 뜻한다. 예로써 엘론드의 회의에서 첫 등장하는 보로미르의 경우, 톨킨은 보로미르가 “큰 키에, 고상하고 잘 생긴 얼굴, 검은 머리와 잿빛 눈, 자신감이 넘치고 동시에 매서운 눈빛을 가진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서 묘사한 자신감과 매서운 눈빛이 발전하여 나중에는 반지에 대한 욕망에까지 다다르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원문을 읽어 보면, 톨킨이 매번 각 등장인물에 대한 요약을 제공하면서 글을 계속 이어나감을 볼 수 있다.


사가와의 관련을 보여주는 세 번째 재미난 장치는 사건이 진행되어가는 방향에 대한 관심이다. 즉,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동안 서술자의 관심은 사건과 모험, 그리고 영웅적 행동들에 대해서만 집중되어진다. 이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사로운 느낌이 이야기 도중에 끼어 드는 것을 차단하고, 오직 하나, 주어진 이야기의 완성과 관련된 사건들만이 계속 나열되게 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높이는 사가 문학의 특징이었다. 이런 연유로 책에서는 - 영화와 전혀 다르게 - 아라곤과 아르웬의 사랑 이야기가 본문에서 빠지고 부록 편에 가서 붙어 있고, 오히려 파라미르와 에오윈의 이야기가 아주 잠깐 언급되는 정도이다. (사가가 교육과 전승에 쓰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기에 당연히 개인적인 주석이나 관심사는 배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반지의 제왕>에 나타난 북구 신화의 영향은 훨씬 많이 찾아 낼 수 있다. 중간계로 번역되는 Middle-earth가 고대 아이슬란드어 미드가르드의 영어식 표현이고, 운문 엣다에서의 Myrkwood가 톨킨에서는 곧바로 Mirkwood로 나오는 등 말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북구 신화를 다루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톨킨은 몹시도 섬세하게 작업을 하였기에 웬만한 눈썰미를 가지고서는 그 원형을 찾아 내기가 쉽지 않다. 톨킨에게 있어서 북구 신화는 이야기를 정하고 끌고 나가는 커다란 무대 장치였지, 바그너처럼 개별 에피소드를 가져다 쓰는 재료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그너 vs. 톨킨

반지의 경우로 돌아가보자. 바그너가 엣다에서 나온 저주가 담긴 반지를 가져다가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새로 부여했다면, 톨킨은 이런 반지에 자유 의지를 새로 담아 자기 원주인을 찾아가는 무서움을 더했다. 바그너의 반지가 가진 자를 불행에 빠뜨려 죽게 하는 매개체라면, 톨킨의 반지는 죽음보다 더 끔찍한, 반지 소유자를 반지의 지배하에 놓게 하는 특징을 지녔다. 특히 바그너의 반지가 단순히 저주 받은 물건이었다면, 톨킨의 반지는 반지 그 자체가 살아서 힘을 발휘하는 사악한 존재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두 반지가 같은 반지인가? 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굳이 따지면 톨킨의 반지가 훨씬 고급스럽고(?) 상위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 반지의 업그레이드 판인가? 혹은 맨 처음 질문 –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의 반지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 – 을 다시 생각해보자.


톨킨은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톨킨 자신이 옥스포드의 고대영어 교수이었기에 북구 신화와 사가에는 정통했었고, 따라서 북구 신화를 차용한 바그너의 작품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또한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C.S. 루이스가 열열한 바그네리안이었으며, 20세기 초의 유럽 문화계의 풍토를 보아도 바그너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었다. 게다가 톨킨은 C.S. 루이스와 함께 종종 바그너 공연을 보러 갔었으며, 한때는 C.S. 루이스와 함께 <니벨룽의 반지>의 두 번째 작품 발퀴레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톨킨이 자신의 <반지의 제왕>과 <니벨룽의 반지>의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두 반지는 모두 둥글고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둘 사이의 유사성을 그것으로 끝이다”라는 엄청난(?) 내용을 글로 남겼다.


바그너를 잘 알고 있던 그가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추측하건대 그는 바그너와 바그너 음악이 싫었던 듯 하다. 좀더 정확히 말해, 바그너가 그의 예술을 통해 추구했던 세상의 모습에 거부감을 가졌던 듯 하다. 아마도 톨킨에게 있어서, <반지의 제왕>을 통해서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들 – 호빗들이 보여주는 자연과의 조화상태, 아라곤에서 느껴지는 그리스도 이미지의 구원자 등 –은, 결코 바그너가 원했던, 악극을 통한 사회 개혁 – 신들의 세계가 몰락하고 영웅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는 –과 양립할 수 없는 다른 지향점을 가졌다고 톨킨은 느꼈던 듯 하다. 실제로 한 사람은 독일의 민족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고 인간성의 극대화를 주창하던 음악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 모든 주장의 덧없음을 이미 눈으로 본, 은둔 생활을 즐기던 영국의 로마 캐톨릭 신자였다. 게다가 톨킨은 나찌즘이 어떻게 바그너를 이용해서 (그리고 그가 아끼던 북구 신화까지 함께 끌고 들어가서) 독일 사회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2차 세계 대전을 만들어 냈는지 보지 않았던가? 이런 연유로, 단순히 자신의 작품이 누구의 아류라는 깍아내리는 발언 때문이 아니더라도, 톨킨은 바그너를 의식적으로 멀리할 만한 충분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다만 이 모든 부정에도 불구하고 한때 그가 바그너를 즐겨 들었고 또 열심히 연구했다는 것만큼은 역사적 사실이다. 동시에 그것이 톨킨의 작품에서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드러났는지는 현재 단계에서 아무도 명확히 말할 수 없다.


글을 맺도록 하자.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면서 바그너에게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톨킨 자신이 부인하고 또 이를 번복할 반증도 없다. 그저 위에 언급한 “바그너 반지의 업그레이드판 아니냐?”는 정도의 추측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런 추측도 톨킨이 북구 신화를 어떤 식으로 가져다 사용했는가를 고려해볼 때 실제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맨 처음 밝힌 대로 두 작품은 같은 샘에서 나온 서로 다른 물줄기로 보는 것이 더 현명할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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