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황금 감상 가이드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제일 먼저 하고픈 말은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것이다. 굳이 라인황금뿐만 아니라 반지 전체에서 신경 써야될 사항중의 하나는 "많이 먹으면 나중에 고생한다"라는 선배들의 충고이다. 특히 라인황금은 굉장히 위험한데, 2시간 반이상을 육박하는 긴 공연 시간 동안, 중간 휴식 시간이 없다. 즉, 한번 들어가면 끝날때까지 못 나온다. 라보엠이 약 1시간반 공연에 3번 휴식시간을 주고, 투란도트같은 경우 2시간 10분 공연에 2번의 휴식 시간이 있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위험한(?) 공연을 보는 것인지 알겠는가?

 

<제1장>

지휘자가 지휘대에 서고 불이 모두 꺼진 다음, 더블베이스 소리에 이어 (실은 들릴락 말락하는) 호른 소리로 반지라고 불리는 다른 세상은 시작한다. 첫번째 혼이 하나의 음을 끌고 버티는 동안, 다른 8개의 혼이 차례로 하나씩 더해지면서 그 세상은 열리게 되는데, 이 8명중에는 반드시 틀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몇번째 주자가 틀리는가를 찾아 내는 것으로 반지 감상자의 긴 여정은 시작된다.

 

막이 올라가면 무대를 한번 쭉 둘러 보시라. 넘실대는 라인강과 라인 처녀들을 어떻게 표현해 낼것인가는 바그너 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숙제이다. 여자 3명을 피아노 줄에 매달아서 돌린 경우도 있고, 대형 수조에 넣어 버린 적도 있고, 앞에 커텐을 쳐서 분위기만 살린 경우, 연무와 레이저 광선으로 물결을 만들어 낸 경우 등등 온갖 방법들이 등장했던 곳이 바로 여기다. 연출자 입장에서 볼 때는 첫 장면에서 뭔가 관객들의 눈을 확 끌어야 되는 부담감이 막중한 장면이기도 하다.

 

라인의 처녀들 ♬Rhine Maiden: 맨 처음 반지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이 여자들이 로렐라이 언덕의 인어(人魚)인줄 알았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오딧세이에 나오는 싸이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환타지 게임에 나오는 닉시 Nixie라는 괴물과 닮았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이 여자들이야말로 골빈 Party Girl로 보인다. 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실실 웃으면서 남자 - 그것도 못 생긴 남자 - 하고 희희덕 거리는 것 빼고는. 실제로 이 아가씨들을 싸구려 창녀처럼 묘사하는 것이 한동안 유행이었다.

 

라인골트! 라인골트! ♬Rheingold ! Rheingold! : 라인강의 처녀들이 있는 힘껏 외치는 이 부분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 몹시 시끄러운 느낌을 주지만, 여기서 못 참으면 나중에는 이보다 더한 것 발퀴레의 호이토호 Hojotoho 같은 을 볼 때 심장마비를 걸릴지도 모른다. 실은 이 단순한 두 마디의 외침에서 수많은 유도동기들이 파생되어 나오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랑의 부인 ♬Renunciation of Love : 처음 라인황금을 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멜로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보글린데의 경고인지 탄식인지 구별 안되는 이 묘한 멜로디가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대개 이쯤 되었을 때 그냥 잠이 들었다.)

 

<제2장>

신들의 영역 발할라: 이 부분은 어쩔수없이 지루하다. 보탄은 처음에는 마누라, 중간에는 거인들, 나중에는 로게를 붙잡고서 말싸움/승강이를 벌린다.

 

처음에 나오는 멋있는 관현악은 발할라 ♬Valhalla를 묘사한다. 속으로 따라가 보면서 그 동기를 기억하도록 해보자. 워낙 계속해서 나타나고 반복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신들이 사는 세상  발할라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 유도동기 쓰이는 곳마다 별로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유도동기는 반지의 유도동기와 거의 유사한 유도동기이다. 즉, 알베리히에게 세계 정복을 위한 무기로 반지 Ring가 있었다면, 보탄에게는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다른 무기 발할라 가 있는 것이다.

 

프레야가 뛰어 들어오는 장면에 들리는 나를듯한 바이올린 소리는 종종 비행 flight ♬flight? 이라고 잘못 알려진, 요즘은 프레야/사랑 ♬Freya 이라고 불리우는 유도동기이다.

 

곧 이어 등장하는 굵은 팀파니 소리가 거인 ♬Giant의 주제이다. 거인을 만드는 방법도 역사속에서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가수가 다른 사람위에 올라타는 방법(무등), 장대위에 서있는 법, 로보트식으로 조정하는 법 등등. 어느 방법으로 거인을 만들던지 한결같이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손동작이 상당히 어색하다는 것이다.

 

한동안 몹시 지루하다. 그냥 자도 된다.

 

도너의 망치를 막는 보탄의 창 ♬Spear. 여기서 나오는 하강 리듬의 트럼본은 단순히 창뿐만 아니라 계약의 신으로서 보탄의 권위 좀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의 억압과 압제 (하강하는 리듬으로 표현된) 를 나타낸다.

 

불의 신 로게가 나타나는 장면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연출상의 묘미이다. 까다로우니까 그냥 무시하는 연출가들도 많다. 여기서 로게는 단지 불이 아니라,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살피는, 더 나아가 일들을 도모하고 꾸미는,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기만할 수 있는 신이다.  이런 일에 딱 맞는 악기는? 피콜로? 웃기지 마시라. 플룻? 애들 장난하나? 튜바? 충분히 사악하지만 튜바에게는 다른 사명이 있다. 그렇다. 오케스트라에서 로게만큼이나 기만적인 존재가 있으니 그 이름은 바이올린이다. 스타카토로 끊어 올리는 것을 보면 조심해야한다. 마치 나풀거리는 미니스커트를 조심해야 하듯이.

 

긴 로게의 독백을 들으면서 잠이 온다면 -à  당신은 정상이다.

 

거인들이 프레야 끌고 나가고 신들이 축 처진 후에, 지하세계로 가는 무대 장치가 나온다. 무대가 통째로 올라가던지, 아니면 하수도 구멍처럼 빠져 내려가던지 둘중의 하나이다.

 

<제3장>

니벨하임으로의 하강 ♬Descent to Nibelheim: 여기서 들리는 이상한 타악기 소리는 트라이앵글이나 캐스터넷츠가 아니라 12대의 풀무 대장간에서 쓰던 를 내리치는 소리이다. 니벨룽 난쟁이들이 광석을 제련해서 세공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리라. 여기서도 1~2명쯤은 박자를 놓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미메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난 다음부터 보통 잔다. 그래서 별로 쓸 것이 없다.

 

미메가 자랑하는 변신 투구 타른헬름 ♬Tarnhelm도 가만히 들어보면 바이올린 소리로 묘사되고 있다. 멋있게 이야기해서 변신이지, 상대방에 대한 속임수가 변신투구 도깨비감투의 원 속성이라면 바이올린이 이 역할을 맡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내용을 보면 미메와 알베리히는 여러 번 만난 사이. 이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쯤에서 깨어난다. 사악한 튜바를 기억하는가? 여기 용 ♬Dragon 으로 변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그래봐야 시간으로는 아주 잠깐. 곧바로 두꺼비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나마 알베리히가 금새 잡혀서 3막이 끝난다.

 

여기까지 당신이 한번도 졸지 않았다면 당신은 왜 내가 계속 잠자는 이야기를 했었는지 모를 것이다. 아직 4막 남았다. 정확히 1시간 더 앉아 있어야만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제4장>

이제 자유의 몸이라고? Bin ich nun frei? : 알베리히 역을 맡은 가수가 괜찮은 사람인지 보는 방법은 이 부분에서 눈 크게 뜨고 그를 관찰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토해내는 감정의 분출에 공감이 가는지 아닌지를 보면 된다. 흔히 바그네리안들 사이에서 비-독일인이 하기 가장 힘든 거의 불가능한 역할이 알베리히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마도 4장 첫부분의 이 장면 때문이 아닐까? 곧 이어 나오는 저주의 유도동기는 꼭 들어 두어야 한다. 앞으로 3박 4일동안 줄기차게 나올 유도동기 이기 때문이다.

 

파졸트: 거인들 또 나타난다. 속으로 안 나타났으면, 빨리 죽었으면 할 것이다. 그래도 각설이마냥 죽지도 않고 또 와서 계속 시간만 끌고 있다. 1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각설하고, 최근 바르셀로나 링에 출연한 연광철씨의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나는 왜 파졸트가 파프너보다 좋은 역이었는지 몰랐다. 나중에 반지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긴다면, 그때는 한번 구해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 참고로 파졸트만이 극 전체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사랑을 찾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은, 그래서 결국은 자기 형제에게 맞아 죽은, 캐릭터이다.

 

에르다 ♬Erda : 푸른 잠옷을 입은 Sleeping Queen. 자다가 나온 듯한 콘트라알토의 느린 목소리로 보탄에게 다가올 신들의 황혼에 대해 이야기해주고는, 다시 자러간다. 같이 잠을 잘수 있는 마지막 챤스.

 

파프너가 파졸트를 때려 죽일 때 나오는 저주의 동기 ♬Curse 를 들었는가?

 

도너 ♬Donner: 음산하고 정리안되는 분위기에서 듣는 테너의 독창. 이 부분을 잘 부르면 나중에 지크프리트까지 노려 볼수 있는 좋은 역이다.

 

프로: 무지개 다리를 만드는 것 ♬Rainbow Bridge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데, 사실 별로 볼 것 없다.

 

신들의 발할라 입성: 종종 따로 떼어서 연주되기도 하는 오케스트라 소품. 이때 같이 들어가지 못하는 / 않는 로게의 얼굴 표정을 감상해 보아라. 바렌보임 반지에서 로게역을 맡았던 Graham Clark의 표정은 가히 압권.

 

이때 무대 뒤에서 들려오는 라인처녀들의 곡조가 처음에 나왔던 Rheingold!와 같고 다만 장조 major에서 단조 minor로 바뀐 것 ♬RhineMaiden's Lament 을 알아차렸다면 당신은 고수. 게다가 Rheingold! Rheingold! Reines Gold! (라인황금, 라인황금, 정결한 황금)이 왠지 모르게 운율이 맞는다고 생각했다면 그때는 당신은 초고수 (당신은 왜 이 글을 읽고 있는가?)

 

다 끝났다. 막 내리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야한다: 나는 반지의 첫 부분을 살아 남았다고. 또한 심각하게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내일도 나와서 이 짓을 계속 해야 하는가 하고 ……  다행히 발퀴레는 인기가 많은 편이라서 표 팔기가 어렵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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