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크프리트 감상 가이드

 

 

 

<제1막>

나는 지크프리트가 지겹다. 링 싸이클 중에서 ..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크프리트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전체에서 절반이상 지난, 조금만 더 버티면 끝이 보이는 지점이지만, 그래도 지겨운 것은 지겨운 것이다.

 

1막 서곡은 기본적으로 용이 지키는 보물 ♬hoard 동기와 니벨룽의 동기♬Nibelung 로 범벅되어 있다. 바순은 주로 전자를, 나머지는 후자를 연주한다. 사실 1막 전체 분위기는 의외로 라인황금 3장 니벨하임 장면 과 유사하다. 알베리히나 미메나 빛이 안드는 지하동굴을 자기 집으로 삼아서  그랬을까? 게다가 계속 뒤로 깔리는 니벨룽 주제들 ..

 

1막의 주제를 굳이 따져 보면 영웅과 그의 출생 비밀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분명히 지크프리트 1막에 묘사된 지크프리트는 영웅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는 단순히 그가 용을 죽이기 이전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태도때문에 그러하다. 미메을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하며,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통제가 되지 않는 그런 식의 영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미메에게 칼을 만들어 내라고 다그칠 때 그의 모습은 거의 사악하다고 할 정도이고, 나중에 나오는 두려움 이야기에서는 무식하고 무모하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평가 아닐까?

 

아무튼 무대 연출의 입장에서 보면 지크프리트 1막은 커다란 풀무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 일종의 쇳물 공장 같은 작업실 분위기가 나야 한다. 최소한 쇳덩어리들을 두드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모양이 나와야 한다. 어찌 보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계장치같은 연출이 가능한 막이기도 하다. 비록 요즘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지 자체가 공장 이야기로 몰아 붙이는 연출이 나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지크프리트가 처음 등장할 때 원래 무대 지시대로라면 을 타고 들어와야 한다. 대사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미메가 놀라 곰 데리고 나가라고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실제 연출에서도 진짜 곰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비슷한 예가 발퀴레에 등장하는 양이 끄는 프리카의 수레와 브륀힐데의 말 그라네이다.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 무엇보다도 무대 위에서 실례를 하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아라. 말똥 냄새가 퀴퀴하게 퍼지는 무대위에서 노래 불러야 하는 가수들 입장을 ..

 

1막 2장은 방랑자로 분장한 보탄과 미메의 수수께끼 놀이가 그 중심이다. 방랑자라는 새로운 유도동기가 나오지만, 역시 이 장을 지배하는 유도동기는 미메로 대표되는 니벨룽의 동기와 보탄의 창 동기이다. 의외로 여러 유도동기들 지크프리트 , 파프너, 로게 등이 골고루 등장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런 수수께끼 놀이의 답만 따로 떼어서 보아도 재미있다. 미메가 보탄에게 물은 질문의 답은 니벨룽(지하) 거인(땅위) 신들(구름위) 이고, 그 내용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의 축약판이다. 또 반대로 방랑자가 미메에게 물은 답  봘중 노퉁 - ? 은 극이 어떤 매개체를 통해 진행되어 왔는지, 또 진행될 것인지를 알려 주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보탄이 스스로를 지칭하면서 빛의 알베리히 Licht-Alberich 라고 말한 부분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이 이제까지 해온 행동을 보면서 어둠속 알베리히가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면, - 아마도 그랬기에 보탄이라는 신적 위치와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지 않고, 다소 방관자적이고 관조자적인 입장의 방랑자로 나타났겠지만 갑자기 이런 보탄에게 연민의 정/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까닭은 뭘까?

 

이 장면들에서는 미메의 표정 변화가 관건.

 

노퉁을 다시 붙이는 자에게 네 머리를 맡긴다는 방랑자의 이야기 때문에 미메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까지 간다. 그래서 거의 환각 환청 수준에 빠지게 되고, 파프너가 나타나 자기를 삼키려 쫒아오는 환각에 시달리는데,  정작 나타난 것은 파프너가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지크프리트이다.

 

지크프리트, 특히 그중 1막은 전체 링 싸이클중 가장 동화적 요소가 강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그러나 분명히 들어 보았던 옛날 설화들의 총집합인 것이다. 그중 몇 가지만 나열해 보자.

  •  부모를 잃어 버린 영웅

  •  계모/계부와 사이가 나쁨

  •  깊은 숲속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용과 그의 보물

  •  유일하게 유산으로 남아 있는 칼

  •  자기의 칼을 다시 만드는 이야기

  •  목을 걸고 하는 수수께끼 놀이

  •  두려움을 모르는, 그러나 순진한(?) 영웅

  •  영웅을 이용해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악한

  •  수호천사처럼 영웅을 지켜보는 인물

이런 사람이 곧 용을 쳐 죽이고 영웅이 된다는 전설은 어쩐지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1막을 볼때마다 왠지 다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또 보는 듯한 진부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위에 열거한 그런 까닭일 것이다.

 

<제2막>

파프너/ 드라곤/ 저주/ 반지 네 주제가 서로 꼬리를 물면서 계속 나오는 서곡은 제 2막의 주제를 너무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오는 알베리히-방랑자 (-파프너) 장면이나 미메-지크프리트 장면은 잠을 잘수 있는 최선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듣거나 보았던 모든 반지에서 이 장면에서는 반드시 한번씩 졸았던 듯 하다. 작곡자의 의도가 방랑자 보탄은 조금 착해졌어도 아직 확실히 모든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고 (말은 다르게 하지만), 알베리히은 오히려 반지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진 듯 하며, 미메는 이전의 계획에서 점점 더 구체적으로 살인 의도를 나타내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는 점만 파악하면 되겠다.

 

2막에서 유명한 장면은 지크프리트가 미메와 헤어진 다음에 나온다. 흔히 숲속의 속삭임 ♬Forest Murmur 라고 불리는 이 장면은 지크프리트가 혼자 숲속에서 자기 아버지/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지점부터 나오는데, 이떄 나오는 현악기들의 소리가 정말 바람결에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듯한 느낌을 내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혹자는 이 부분이 반지 전체에거 가장 로맨틱하다고 주장하는 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반지가 얼마나 non-romantic한 작품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

 

산새 ♬Woodbird : 오보에로 나오는 첫 산새 유도 동기는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나중에 지크프리트의 방향을 졀정해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산새와 지크프리트가 주고 받는 일련의 장면은 눈꼽만큼이나마 낭만적 요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새야말로 지크프리트를 사주해서 파프너를 죽이게 한 진짜 장본인이지 않을까? 혹은 브륀힐데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전체 스토리를 파멸로 끌고 가는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논쟁 때문에 살아있는 최고의 연출가중 하나인 Harry Kuyfer  같은 이는 대놓고 보탄이 산새를 조정해서 지크프리트에게 이 같은 정보들을 흘린 것으로 설명한다. 크게 틀리지 않은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런 입장을 쫒아간다면, 지크프리트, 아니 링 싸이클 전체의 주인공은 보탄이 된다. 그의 의도와 기획에 의해 극 전체의 내용이 진행된 것이기 때문인다. 반대로 지크프리트의 자각(自覺)에 의해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고 본다면, 그때는 지크프리트가 반지 전체의 주인공이라고 볼수 있겠다.)

 

아무튼 여기서 지크프리트가 자기 나팔을 부는 장면 ♬Siegfried's Horncall은 중요하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 장면 이후에 지크프리트의 행동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크프리트가 영웅으로서의 자아발견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이때 나오는 혼 독주는 반지 전체에서 이색적으로 독주자의 이름을 별도로 표기해주는 특혜가 있을 정도이다.

 

이런 배경에는 바그너 자신이 반지 대본을 써놓고 쭉 작곡을 해 나가다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추고 약 12년 동안이나 반지의 작곡을 쉬었던 것과 관련있다. 뉘른베르그의 명가수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이 쉬는 기간동안 나온 작품들이다.

 

: 서양에서는 날개가 있는 용 Dragon과 날개 없는 웜 Wurm을 구별하는데, 굳이 따지면 파프너 ♬Fafner는 날개가 없으니 웜이다. 여기서는 그냥 용이라고 해두자. 반지에 등장하는 단일 소품으로는 가장 크고 동시에 무서움을 일으켜야 하는 장치가 바로 용이다. 바이로이트 초연때에는 런던에서 주문한 철제 용의 가운데 토막이 바이로이트 Bayreuth 가 아닌 베이루트 Beirut 로 가버리는 바람에 작곡가 자신이 화를 펄펄 낸 기록이 있고, 1950년대의 반지에서는 커다란 헤드라이트 같은 눈알 두개만 비춤으로써 (눈의 크기로 짐작해보면 꼬리는 극장 바깥쯤에 있다는) 용을 표현해내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외에도 여러 공연들의 용을 보았지만 그 어느 하나 바로 이것이다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다. 적어도 전통적인 의미의 용으로 말이다.

 

용을 죽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게르만 신화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할 관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유아기적 공포 대상을 제거해가는, 더 쉽게 이야기하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아닐까?

 

다시한번 산새 : 지크프리트가 짐승들의 말을 알아 듣게 된 다음에 나오는 첫 상황이 바로 산새가 주는 경고이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점은 지크프리트의 막이 오른 이후, 2시간 이상이 지난 다음, 처음으로 나오는 여자 목소리라는 점이다. 왠지 모르게 이제까지 지겹고 졸리고 힘겹다고 느꼈다면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지크프리트 전체가 어머니없이 자란 한 꼬마의 성장 동화라는 주장이 꽤 설득력있는 것 같다.

 

 

<제3막>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지크프리트 3막의 서곡이 링 싸이클에 등장하는 여러 서곡중에서 가장 좋다. 아마 가장 유명한 곡은 발퀴레 3막의 발퀴레의 비행일 것이고, 발퀴레 1막의 서곡을 꼽거나 아니면 맨처음의 처음, 라인황금의 서곡을 높이 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여기의 서곡이 제일 좋다. 무엇인가 급박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 마지막으로 세상을 구해낼 다른 방법이 없는가 쫒아 다니는 보탄의 심정 ♬The Need of Gods이 너무나 구구절절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잘 들어보라. 말달리는 소리와 에르다의 주제, 그리고 폭풍과 방랑자의 주제가 한데 어울려진 이 서곡은 그야말로 보탄의 최후 를 보는 듯 하다.

 

에르다: 누가 미인은 잠꾸러기라고 했는가? 잠만 자다가 얼떨결에 불려 나온 여인네치고 예쁘고 그럴듯하게 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 여인의 대사를 가만히 들여 보라. 귀찮다. 나 빨리 돌아가서 계속 자게 좀 놔두어라 아닌가?

진짜 우스운 것은 이런 무성의한 답변이라도 듣기위해 보탄이 그녀를 깨워 일으켰고, 더 우스운 것은 그 답변을 듣고 보탄이 자기의 (남은) 계획/욕심을 진짜로 포기했다는 어이없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굳이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서 했던 생쇼였을까?

 

할아버지 vs. 손자 : 어찌보면 보탄은 참 가족 복이 없는 인물이다.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바가지 긁는 마누라, 반항적이고 자기 마음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딸, 결국은 자기 손으로 죽여 버린 자기 아들등등. 게다가 딴짓하고 놀다가 어렵지도 않은 일을 망쳐 버린 라인 처녀들도 보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어쩌면 이 모든 죄값(!)을 치르는 장면이 여기일지 모른다. 손자에게서 너는 애꾸눈 이라던지, 꺼져 라는 말을 듣다 못해, 결국은 허풍쟁이 내 아버지의 원수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니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항상 스타워즈 삘을 느끼곤 하는데, 정확하게 어느 부분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지 핀포인트 해 낼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보탄/창으로 대표되는 구 세력 앙시앙 레짐과 지크프리트/ 칼로 묘사된 신세력간의 세대 교체를 의미한다고 떠들기도 한다.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만, 내 솔직한 감상 평은 구세대가 져주기 위해서 일부러 나온 자리이지, 신세대가 잘 나서 이긴 자리는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냐? 역사는 이래서 계속되는 것이고 삶은 이어져 나가야 하는 것을 ..

 

이 다음에 나오는 짦은 간막곡도 실은 나쁘지 않다. 마법의 불 바깥에 서있던 지크프리트가 불속으로 들어가서 자기 나팔을 몇번 불고 서서히 다시 마법의 불을 뚫고 등장해서 자고 있는 브륀힐데 ♬Sleeping Brunnhilde를 발견해 나가는 장면을 시간적으로 그럴 듯 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 vs. 여자  -  두려움 : 남자랑 여자랑 맨 처음 서로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설레임일까? 두려움일까? 젊었을 때 나는 지크프리트가 공포를 느끼는 이 장면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비록 난생 처음 보는 종류 여자- 라고 해도, 이미 처음 보는 다른 것 을 가볍게 찔러 죽인 지크프리트 아니었던가? 막상 여자가 두려움과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우는 데는, 결혼후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바그너가 옳았다. 지크프리트라도 별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서 몇 페이지라도 계속 써내 갈 수 있지만,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두자.)

 

누가 누가 잘하나? ♬Love's Greeting : 반지를 가지고 뮤지칼 패로디를 만든 캐나다 출신의 여류 코메디언 Anna Russell은 이 장면이야말로 테너와 소프라노간에 있을 수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네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르던, 나는 그것보다 더 크게 지를 수 있어 시합이라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3막 3장에서는 도저히 잘 수가 없다. 막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너무나 뻔하고 진부한 가사임에도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바그네리안 조크 하나: 바그너 오페라에서 테너와 소프라노의 차이는? 정답은 5kg이다. 1950년대의 미녀 브륀힐데 Astrid Varnay 이후, 날씬한 브륀힐데는 없었다. 다들 한 덩치들한다는 것이 중평이고, 특히 요즘 잘 나가는 브륀힐데들은 몸무게 때문에 극장측에서 경고를 받는 경우도 있다. 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두 드럼통의 사랑을 즐겨 보라.

 

만약 당신이 여기까지 쫒아 왔다면, 당신도 심각하게 바그너교(敎)에 입교하는 것을 고려해 보라. 바그너교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든지 배교(背敎)를 허용한다는 점이다. 왜? 제발로 걸어 나가 봤자 얼마 안돼서 다시 제 발로 돌아 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일반인들의 오해(?)와는 정반대로 바그네리안들중에는 나치주의자나 싸이코가 없다. 다만 바그네리안 모임에 오래 있어본 결과 바그너 모임들의 치명적인 단점이 두 가지 있는데, 지나치게 말들이 많다그러면서도 말들 정말 잘한다라는 점이다. 그외에 사람들은 정말 양질(良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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